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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24] 여한의사로서 의료봉사를 하며 - 박경미 부회장 기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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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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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미 부회장의 기고 > - 여한의사로서 의료봉사를 하며… -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박 경 미
대한여한의사회의 부회장직을 맡은 지도 2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간 여러 사회활동을 하면서 한의사들과의 교류, 특히 여한의사들과의 교류가 대학 동기들 몇몇에 국한되었던 저로서는 여한의사회에 들어와서 교우하게 되는 선후배 여한들과의 시간이 너무나 신선합니다. 나이도, 대학도, 환경도 각양각색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귀하고 소중한 만남입니다.
‘이런 귀한 후배들에게 선배 여한으로서 나는 무엇을 나눠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개인적 화두입니다. 내놓을만한 학문적 성취도 없고, 거대자산을 일궈 사회 환원이라는 덕업을 수행할 능력도 없고, 의권에 이바지할만한 정치력도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소시민적 여한의사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제가 여한 조직에 들어와서 그나마 무언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의료봉사를 수행하는 거였습니다.
바깥 사회 외부 활동을 하다 보면 의료 전문직에게 거는 기대를 많이 느낍니다. 소외된 계층에 무언가를 해 줄 거라는 기대입니다. 물론 그 기대들이 환상에 가까운 경우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래도 우리가 감당할 만한 수준입니다. 복지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실 의료봉사가 필요한 곳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료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를 할 기회가 많이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다행히 여한의사협회라는 조직에 들어와 보니 아직도 의료봉사를 통해 제 나름의 사회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2010년경 법무부 소년 보호 교육정책자문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모 기관에 의료봉사를 나갔습니다. 그곳은 법원에서 소년원 가기 전 단계의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여자아이들을 일정 기간 사회와 격리하면서 공부 및 생활지도, 직업교육을 통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사회에 복귀시킨다는 취지로 설립된 기관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7~8년가량을 다녔습니다. 제 아이들과 같은 나이의 청소년 여자아이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엄마 같은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치료하고 함께 눈 맞추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2023년 9월부터 시작된 모 센터의 봉사는 예전의 그 기억을 건드리면서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모든 조건과 환경이 십 년 전의 그곳과 너무나 흡사한 곳, 마치 십 년 전의 저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봉사를 시작한 첫날, 너무나 익숙해서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저의 기대감은 여지없이 깨져버렸지요.
제 당혹감의 첫 번째 이유는, 평균 연령대가 너무 어려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엔 16~18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반해 지금 이곳의 평균 연령은 14~16세 정도입니다. 그만큼 범죄 연령이 어려졌다는 얘기지요. 두 번째 이유는, 10년 전에 비해 정신과 약의 복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겁니다. 신경안정제, 항우울증, 수면유도제 등의 약 복용을 안 하는 아이를 찾아보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입니다. 한의사로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세 번째 이유는, 불과 십 년 사이에, 눈에 띄게 각박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센터의 보호를 받고 잘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센터를 고소, 고발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동 학대를 당했다고요. 너무나 서글픈 세태입니다. 네 번째 이유는, 십 년 전에 비해 물질적으로 너무나 풍족해졌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먹거리에 있어서는 여느 가정집보다도 좋은 음식과 간식을 제공받습니다.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동영상을 통하거나 센터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게 합니다, 심지어는 특정 과목 과외수업도 받게 합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늘 허기지고, 오늘도 신경안정제 없이는 살아낼 수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십 년가량의 시차를 두고 만나게 된 아이들에게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센터에 나가면 양가감정이 듭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한의사로서의 무력감과 동시에 그런데도 내가 한의사가 되었으니 이 아이들의 손이라도 한번 쓰다듬어줄 수 있구나, 하는 자기 위로가 생깁니다. 후에, 이 아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언젠가, 어느 시설에서 자기의 손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었던 그 손의 온기를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습니다.
사회복지가 너무나 잘 되어 있는 21세가 대한민국에서 여한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경제인으로서 세금 내고 고용 창출하는 것으로도 훌륭한 사회 기여입니다. 하지만 여한의사라는 독특한 정체성, 거기에 전문직 여성들에 대해 갖는 사회적 기대감들을 생각한다면 사실 사회 기여, 혹은 봉사…라는 게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봉사는 그 주인공이 봉사 시행자가 아닌 봉사 수혜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가끔씩 봉사 시행자인 내가 주인공이 되는 양 착각합니다. 그래서 봉사에는 자기의 희생뿐 아니라 반드시 자기 절제가 따라야 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 저 자신도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는 마음이 내려앉고 기운도 빠지고 심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또 저희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센터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이 일정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세태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아이들과의 조우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가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달되는 따스한 그 무엇이지요. 따스한 그 무엇을 서슴없이 내어줄 수 있는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오십 후반 줄에 들어선 이 나이에도 무언가를 배우고 느낄 수 있는 현장을 제공하고, 삶의 여정을 넓고 깊게 만들 기회를 마련해준 대한여한의사회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좀 더 많은 후배님들께서 이 여정에 동참하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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